자작시

가을, 명주원에서

sala 2006. 2. 12. 19:28
가을, 명주원에서

        한나









      구절초 들길 따라 피는

      언덕에 오르면

      가을 햇살에 푹 빠진 *명주원 있다

      건물 한 켠 찬양소리 가득한

      뜨락에 발을 들어 놓으니



      모임 후 흩어지는 원생들 손에

      에이스과자 오렌지 주스를 하나

      흔들거리며 꽃처럼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순수하고도 가식 없는 알림이다

      겸연쩍은 웃음을 주며

      마주잡는 나의 악수

      얼마를 더 살아야 그들과

      같은 향기로

      내 안부를 전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올 것인가



      나는 어느새 빗자루를 들고

      가슴 속내를 싹싹 쓸어내고 있다

      손을 잡고 마당을 거닐다가

      손톱을 잘라 주었던 터벅머리 총각은

      일곱 살이라고 말한다

      너 몇 살이야 라고 물어보던

      단발머리 아줌마는

      4살에 성장을 멈추었나 보다

      빈 음료수 캔을 들고 노래를 부르면

      온몸을 흔드는 아저씨는

      가수가 꿈이었을까

      호박 가지 양파 농사를

      지어 작은 트럭에 싣고와

      노래를 부르면 서너 명 아저씨가

      손을 흔들며 마당으로 나른다







      함께 동행한 아이들에게

      과자를 나누어 주고

      아끼던 인형을 내 줄 때마다

      삭발했다가 조금 자란 머리를 한

      아줌마에게서

      들국화 냄새가 눈물겹다

      모퉁이 화단 장미나무에서

      자꾸만 가시를 따는 모자 쓴 아저씨

      보육사에게 잔뜩 혼이 났지만

      눈웃음을 퍼트린다

      집이 금산인데 못 가게 한다고

      일러바치는 멋쟁이 할머니



      바쁘지도 급하지도 않은

      움직이는 꽃들이다

      머뭇머뭇 뒷걸음치며 떠나는 우리

      다시 오라고 하는 인사

      단풍잎처럼 가볍지만

      나는 여전히 무겁고 힘겹게

      내리막을 내려오는 장애인이다



      *명주원 : 충남 공주시 반포면 송곡리 268번지



      (다양한 지체 부자유 장애자 보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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