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명주원에서
한나
한나
구절초 들길 따라 피는
언덕에 오르면
가을 햇살에 푹 빠진 *명주원 있다
건물 한 켠 찬양소리 가득한
뜨락에 발을 들어 놓으니
모임 후 흩어지는 원생들 손에
에이스과자 오렌지 주스를 하나
흔들거리며 꽃처럼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순수하고도 가식 없는 알림이다
겸연쩍은 웃음을 주며
마주잡는 나의 악수
얼마를 더 살아야 그들과
같은 향기로
내 안부를 전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올 것인가
나는 어느새 빗자루를 들고
가슴 속내를 싹싹 쓸어내고 있다
손을 잡고 마당을 거닐다가
손톱을 잘라 주었던 터벅머리 총각은
일곱 살이라고 말한다
너 몇 살이야 라고 물어보던
단발머리 아줌마는
4살에 성장을 멈추었나 보다
빈 음료수 캔을 들고 노래를 부르면
온몸을 흔드는 아저씨는
가수가 꿈이었을까
호박 가지 양파 농사를
지어 작은 트럭에 싣고와
노래를 부르면 서너 명 아저씨가
손을 흔들며 마당으로 나른다
함께 동행한 아이들에게
과자를 나누어 주고
아끼던 인형을 내 줄 때마다
삭발했다가 조금 자란 머리를 한
아줌마에게서
들국화 냄새가 눈물겹다
모퉁이 화단 장미나무에서
자꾸만 가시를 따는 모자 쓴 아저씨
보육사에게 잔뜩 혼이 났지만
눈웃음을 퍼트린다
집이 금산인데 못 가게 한다고
일러바치는 멋쟁이 할머니
바쁘지도 급하지도 않은
움직이는 꽃들이다
머뭇머뭇 뒷걸음치며 떠나는 우리
다시 오라고 하는 인사
단풍잎처럼 가볍지만
나는 여전히 무겁고 힘겹게
내리막을 내려오는 장애인이다
*명주원 : 충남 공주시 반포면 송곡리 268번지
(다양한 지체 부자유 장애자 보호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