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빈자리, 두리번 거리다

sala 2006. 2. 24. 18:54



 

빈 자리, 두리번 거리다


                               김은자


입을 벌리세요, 더 크게!
터널 안을 들여다보며 한마디 던진다
세월 좋아진 게야, 전에 없었던 차별화된
입체교차를 하는 지하철 노선이 유일하게
4호선 남태령역과 선바위역 구간이라지

무턱, 설측, 투명, 돌출입교정은 이곳에서 교차하는데

 

입을 벌리세요, 더 크게!
에이스과자를 먹다가 툭하니 갈라진 치아
국토의 한 부분이 무너져
임플란트* 공사가 시작되었다
백두대간에 심지를 박는 일 만만치 않다
나의 口腔 내에서 지하철 공사가 시작되었다
무통 마취주사로 기초를 다지고
감각마저 꼼짝없이 빈 의자에 갇혔다
메스를 들고 들쑤셔놓는 의료용 장갑 속의 손놀림이 바쁘다
드릴로 턱뼈에 소음을 내면 구멍 뚫는 소리
위이잉 위이잉 뭇파리 소리처럼 귀에 들린다
간간이 응접실에서 흘러나오는 TV 소리
환경 스페셜에서 현대인을 겨냥한 방송을 한다
선진국가들은 거대한 콘크리트 숲에서 살다가
아파트를 헐어내면서
과거의 흙과 나무로 주거환경으로 바꾼다고 한다
가득하던 자리, 채워진 자리가 빌 때면
누군가 앉혀지고, 앉아야 하고
들어와 채워야 하리라
빈 자리 나사못 돌려 인공치근으로 채우다
실크실로 여길 저길 여미듯 꿰맨다

 

옛것으로 돌아가자는 방송이 끝나자
따끔거리는 실크실 끝을 따라 빈 자리를 찾고 있었다


 
*임플란트: 치아가 빠진 부분에 특수금속(주로 타이타늄이나 타이타늄합금)으로 만들어진 인공치근을 턱뼈에 이식하여 뼈와 엉겨붙게 하여 고정시킨 후 이것을 이용하여 이를 해 넣음으로 본래 자신의 치아와 같은 감각이나 씹는 기능으로 생활할 수 있게 하는 시술방법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벚꽃지던 날  (0) 2006.04.26
뻥치는 봄  (0) 2006.04.07
대나무 숲  (0) 2006.02.23
봄바람  (0) 2006.02.15
애견 유치원  (0) 2006.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