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스크랩] Re:간이역

sala 2007. 8. 1. 00:59

간이역



김은자

생맥주집 간이역에 도착하자

흑백의 사진 한 장, 기억에서 잊히려는 현동역

뭉텅뭉텅 떨어져나간 콘크리트 계단을 내려간다

낡고 긴 나무 의자 서너 개, 톱밥난로를 에워싸고 있다

벗겨진 페인트칠에 빛바랜 작은 창문 넘어

기차표를 사고 비둘기 열차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기차는 도착하지 않고

갓 피운 난로는 눈을 에이는 연기를 꾸역꾸역

기차는 농기구를 든 농부를 뱉어놓는다


피질 거품맥주를 따르며 뻥튀기를 씹다가

목구멍으로 밀어 넣으며 울컥울컥 

낙동강 굽이굽이 떠밀려 내려간다 

허허로운 겨울바람이 부는 꺼끌꺼끌한 유년시절이다

하늘 한마지기, 땅 한마지기에

고향을 떠나지 못한 이들

더 이상 바랄 것도 남길 것도 없는 그곳에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막걸리 한 잔에 오가는 농짓거리를

천연덕스럽게 받아 넘기느라 발걸음 붙잡힌 초등학교 동창생

미루나무 위에서 말매미 울어 제치는 여름만 되면

동창회를 한다며 한 소식 보내오리라

영동선 간이역에서 부산한 구둣발 소리 들려오리라 



  




출처 : 늦가을 호수
글쓴이 : 김은자 원글보기
메모 :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생강나무꽃 같은 /김은자  (0) 2008.01.11
[스크랩] 벚나무 잎  (0) 2007.10.22
막장의 노을  (0) 2007.02.26
배불뚝이 항아리  (0) 2007.01.15
인체자연발화*  (0) 2006.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