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쓰레기통처럼/정호승

sala 2006. 7. 22. 20:11


    쓰레기통처럼

                                정호승


    쓰레기통처럼 쭈그리고 앉아 울어본 적이 있다

    종로 뒷골목의 쓰레기통처럼 쭈그리고 앉아

    하루종일 겨울비에 젖어본 적이 있다

    겨울비에 젖어 그대로 쓰레기통이 되고 만 적이 있다

    더러 별도 뜨지 않는 밤이면

    사람들은 침을 뱉거나 때로 발길로 나를 차고 지나갔다

    어떤 여자는 내 곁에 쪼그리고 앉아 몰래 오줌을 누고 지나갔다

    그래도 길 잃은 개들이 다가와 코를 박고 자는 잠은 좋았다

    세상의 모든 뿌리를 적시는 눈물이 되고 싶은 나에게

    개들이 흘리는 눈물은 큰 위안이 되었다

    더러 바람 몹시 부는 밤이면

    또다른 고향의 쓰레기통들이 자꾸 내 곁으로 굴러왔다

    배고픈 쓰레기통들이 늘어나면 날수록

    나는 쓰레기통끼리 서로 체온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쓰레기통끼리 외로움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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