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지문, 혹은 문신

sala 2006. 6. 8. 14:51

 

 

      지문, 혹은 문신
                                            김은자

       

      신(神)은 열 손가락 마디 끝에 지문을 만들어
      가파른 벼랑으로 내몰아 힘겹게 살게도 하고
      평평한 대지 위에서 여유롭고 편안하게 살게도 한다지
      사람들, 등이나 팔이며 눈썹 곳곳에다가
      포기하고 싶은 끈 끊으려 문신을 시술한다고도 하지

       

      동그랗고 길쭉한 지문으로 나임을 증명하고
      꿈틀거리는 용의 문신으로 소속을 알리고
      더러 미용 효과를 얻기도 하며
      또 더러는 자신의 운명을 거슬러 보기도 한다지
      자판기에서 커피나 담배를 사 듯 
      동전을 넣고 무인기계 앞에서 지문을 인식하면
      누구나 원하는 민원서류를 뗄 수 있단다

       

      더러 주민등록증에 있는 지문과 실제 지문이 어긋나
      서류가 나오지 않아 애태우는 사람들
      감자를 깎다가 지문이 지워진 노점상 아줌마
      험한 세월, 지문이 삐뚤어진 건지
      제대로 맞출 수가 없어 증명서가 나오지 않았단다
      지워지고, 닳아 버린 자에겐 거부하는 무인기계
      오늘 조간신문에는 1500년 전
      미이라 손등의 문신이 미스터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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