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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이 지나면 / 곽재구 오늘 내가 한 편의 시를 쓰고 내일 두 편 모레 세 편 쓴다면 천 일 후엔 천 편의 시를 쓸 수 있을까 그때 나는 말하리라 이 아름다운 땅에 태어나 시간이 흐른다고 써야 할 시들을 쓰지 못한다면 사랑하는 사람들 또한 시간이 흐른다고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잖겠는가 써야 할 시들은 많은데 바람들은 맑은 햇살을 뿌리며 응달의 강기슭을 돌아가는데 울먹인 가슴 녹이며 이제는 고요하게 지켜보아야 할 두려움 모를 그리움만 들판 가득 쌓였는데 천 일이 지나면 혹시 몰라 이 아름다운 나라에 태어나 내가 하루 천 편의 시를 쓰지 못해 쓰러질 때 그때 말 못할 그리움은 밀려와서 내 대신 쓰지 못한 그리움의 시들 가을바람으로나 흔들려 내 사랑하는 사람들 귓속에 불어넣어주고 있을지. -詩集 사평역에서 ♡늦가을 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