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신문] “호두, 그 기억의 방” / 최옥향
굴곡진 삶
지도위의 협곡 같은 몸을
동그랗게 말아 안은 둥근 동굴의 소리를 듣는다
어디 하나 싹 틔울 씨눈조차 보이지 않게
으스러져라 껴안고
골마다 바람도 없이 풍장 되어 가던
깜깜한 벽 속의 간극을 재어 보던 소리
늙은 동굴 같은 안방에선
언제나 할아버지의 깊은 시름을 알리는
염주 굴리던 소리가 났었지
손수 앉힌 마당의 징검돌을 건너면
그 끝에서 빛나던 항아리들처럼
한때는 고소한 젖빛 냄새로 흐르던 방들
다시는 정정한 한 그루 나무로 서지 못한 채
오랜 세월을 앉은뱅이로 홀로 견뎌야 했던
목수였던 당신의 호두빛 깊은 주름
달그락, 달그락
둥근 방문 고리를 흔드는 바람소리와
집 모퉁이에 서서 늙어 버린 지팡이처럼
언제나 마른 삭정이 냄새가 나던 그 기억의 방
툭, 딱딱하게 굳은 손아귀에서 마지막 떨어져 구르다
목침 위에 나란히 놓였던
유난히 반질거리던 그 두 알의 호두
결코 소멸되지 않을 단단한 기억 하나가
지금 흔들리며 걷는 내 호주머니 속에서
자꾸만 환한 밖을 기웃거리고 있다
[심사평] “내면심리 형상화 솜씨 뛰어나” 신규호, 문효치, 손해일
한편의 당선작을 선정하는 기준은 작품이 구조적으로 뛰어난 예술성을 지녀야 한다고 보고, 참신성과 독창성, 그리고 시어 선택의 적절성 등을 중시해서 심사하기로 하였다.
〈아버지의 봄〉과 〈심전도〉는 농촌의 어려움을 표현한 작품으로, 현실 문제를 호소력 있게 다룬 점이 돋보였으나, 주제가 단조롭고 지나치게 서술적인 점이 눈에 거슬렸다. 〈민들레〉와 〈오래 된 꽃상여〉는 시어를 다루는 솜씨가 비범하고 서정성이 짙었으나, 시의 구조가 평면적이어서 현대시가 갖추어야 할 시대적 상황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어, 최종적으로 〈호두, 그 기억의 방〉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호두, 그 기억의 방〉은 호두 자체의 내밀한 구조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입체적으로 조화시킴으로써, 과거에 관한 기억을 담고 있는 복잡한 내면 심리의 세계를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솜씨가 뛰어나,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농민신문] (시조) “구석집” / 김사계
또 다녀갔나 보다 구석 집 아들 내외
눈 어두신 할머니 삼십 촉 등 켜시면
그 소식 궁금한 마을 길어지는 시골 밤
남은 건 두 마지기 비탈진 감자밭뿐
말없는 노안 속에 좁아지신 마음이
남의 말 일축하시듯 어두운 등 끄신다
새벽잠 대신하여 켜 놓은 텔레비전
자고 나면 평당 가격 수백씩 오른다는
도회지 삶터 값들을 며칠째 쏟아 낸다
[심사평] “빼어난 종장 처리, 현실감 생생” 한분순, 문무학
심사위원들은 시조 창작에서는 시조의 형식을 다루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이 점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작품의 완성도에 주목하기로 했다. 그 결과 〈구석집〉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구석집〉은 농촌 현실과 홀로 사는 노인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으며, 특히 시조의 형식 활용에서 종장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잘 살려낸 것은 압권이었다. 그리고 압축과 생략으로 할 말을 다 하면서도 말을 줄이는 능력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품 외에 함께 응모한 작품들에서도 당선작에서 보인 미덕을 살리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개인 서정에 머물지 않고 시야가 넓은 점, 회고조에 기대지 않고 현장성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 등을 높이 샀다.
굴곡진 삶
지도위의 협곡 같은 몸을
동그랗게 말아 안은 둥근 동굴의 소리를 듣는다
어디 하나 싹 틔울 씨눈조차 보이지 않게
으스러져라 껴안고
골마다 바람도 없이 풍장 되어 가던
깜깜한 벽 속의 간극을 재어 보던 소리
늙은 동굴 같은 안방에선
언제나 할아버지의 깊은 시름을 알리는
염주 굴리던 소리가 났었지
손수 앉힌 마당의 징검돌을 건너면
그 끝에서 빛나던 항아리들처럼
한때는 고소한 젖빛 냄새로 흐르던 방들
다시는 정정한 한 그루 나무로 서지 못한 채
오랜 세월을 앉은뱅이로 홀로 견뎌야 했던
목수였던 당신의 호두빛 깊은 주름
달그락, 달그락
둥근 방문 고리를 흔드는 바람소리와
집 모퉁이에 서서 늙어 버린 지팡이처럼
언제나 마른 삭정이 냄새가 나던 그 기억의 방
툭, 딱딱하게 굳은 손아귀에서 마지막 떨어져 구르다
목침 위에 나란히 놓였던
유난히 반질거리던 그 두 알의 호두
결코 소멸되지 않을 단단한 기억 하나가
지금 흔들리며 걷는 내 호주머니 속에서
자꾸만 환한 밖을 기웃거리고 있다
[심사평] “내면심리 형상화 솜씨 뛰어나” 신규호, 문효치, 손해일
한편의 당선작을 선정하는 기준은 작품이 구조적으로 뛰어난 예술성을 지녀야 한다고 보고, 참신성과 독창성, 그리고 시어 선택의 적절성 등을 중시해서 심사하기로 하였다.
〈아버지의 봄〉과 〈심전도〉는 농촌의 어려움을 표현한 작품으로, 현실 문제를 호소력 있게 다룬 점이 돋보였으나, 주제가 단조롭고 지나치게 서술적인 점이 눈에 거슬렸다. 〈민들레〉와 〈오래 된 꽃상여〉는 시어를 다루는 솜씨가 비범하고 서정성이 짙었으나, 시의 구조가 평면적이어서 현대시가 갖추어야 할 시대적 상황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어, 최종적으로 〈호두, 그 기억의 방〉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호두, 그 기억의 방〉은 호두 자체의 내밀한 구조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입체적으로 조화시킴으로써, 과거에 관한 기억을 담고 있는 복잡한 내면 심리의 세계를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솜씨가 뛰어나,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농민신문] (시조) “구석집” / 김사계
또 다녀갔나 보다 구석 집 아들 내외
눈 어두신 할머니 삼십 촉 등 켜시면
그 소식 궁금한 마을 길어지는 시골 밤
남은 건 두 마지기 비탈진 감자밭뿐
말없는 노안 속에 좁아지신 마음이
남의 말 일축하시듯 어두운 등 끄신다
새벽잠 대신하여 켜 놓은 텔레비전
자고 나면 평당 가격 수백씩 오른다는
도회지 삶터 값들을 며칠째 쏟아 낸다
[심사평] “빼어난 종장 처리, 현실감 생생” 한분순, 문무학
심사위원들은 시조 창작에서는 시조의 형식을 다루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이 점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작품의 완성도에 주목하기로 했다. 그 결과 〈구석집〉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구석집〉은 농촌 현실과 홀로 사는 노인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으며, 특히 시조의 형식 활용에서 종장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잘 살려낸 것은 압권이었다. 그리고 압축과 생략으로 할 말을 다 하면서도 말을 줄이는 능력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품 외에 함께 응모한 작품들에서도 당선작에서 보인 미덕을 살리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개인 서정에 머물지 않고 시야가 넓은 점, 회고조에 기대지 않고 현장성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 등을 높이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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