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폐차장 근처/박남희

sala 2005. 12. 10. 11:32
     폐차장 근처/박남희

    이곳에 있는 바퀴들은 이미 속도를 잃었다
    나는 이곳에서 비로소 자유롭다
    나를 속박하던 이름도 광택도
    이곳에는 없다
    졸리워도 눈감을 수 없는 내 눈꺼풀
    지금 내 눈꺼풀은
    꿈꾸기 위해 있다
    나는 비로소 지상의 화려한 불을 끄고
    내 옆의 해바라기는
    꿈같은 지하의 불을 길어 올린다
    비로소 자유로운 내 오장육부
    내 육체 위에 풀들이 자란다
    내 육체가 키우는 풀들은
    내가 꿈꾸는 공기의 질량만큼 무성하다
    풀들은 말이 없다
    말 없음의 풀들 위에서
    풀벌레들이 운다
    풀벌레들은 울면서
    내가 떠나온 도시의 소음과 무작정의 질주를
    하나씩 지운다
    이제 내 속의 공기는 자유롭다
    그 공기 속의 내 꿈도 자유롭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저 흙들처럼
    죽음은 결국
    또 다른 삶을 기약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에서 모처럼 맑은 햇살에게 인사한다
    햇살은 나에게 세상의 어떤 무게도 짐지우지 않고
    바람은 내 속에
    절망하지 않는 새로운 씨앗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