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습니다
김춘경
가을이 왔습니다
말없이 마주하는 먼 산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가을이 또 왔습니다
이름없는 풀벌레 소리
정겨운 오솔길에도
발자국 드문 밭이랑에도
눈물나게 아름다운
저녁강변 언저리에도
하루에 한 뼘씩 차 오르는
마음의 강 깊은 그 곳에
반짝이는 물결처럼
아름답고 아름답게
또 그렇게 가을은 왔습니다
올 가을에는
지난 가을 못다 핀 사랑들
탐스런 사과나무 열매처럼
주렁주렁 우리들 가슴에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가슴에 고이는 열망의 빛
높고 파란하늘 가득히
빛나고 또 빛나는
우리들만의 청정하고
고귀한 가을로 말입니다
가을이 왔습니다
소리없이 쌓여 가는 소망처럼
우리들 가슴에 살며시
가을이 또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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